가벼운 심리학 5) 스톡홀름 증후군 – 생존 본능이 만든 유대감

스톡홀름 증후군, 생존 본능이 만든 역설의 심리

“그는 정말 날 다치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그런 상황이었을 뿐이에요.”
이처럼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반응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결코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으며, 실제로 반복적으로 목격됩니다. 자신을 위협하거나 해를 끼친 사람에게조차 연민이나 유대를 느끼는 이 심리는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극한의 공포 상황 속에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택하는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이를 흔히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복잡하고도 역설적인 심리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이상 행동이 아니라 인간 본능에 기반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1. 내 편이 아닌데, 유일하게 나를 살려줄 수 있는 존재

사람은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단순히 신체적인 생존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전 또한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피해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위협하는 가해자를 하나의 ‘생존 자원’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위협의 주체였던 인물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이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심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인질 사건은 이 심리적 현상에 이름을 붙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인질로 잡힌 직원들은 강도들에게 정서적으로 깊이 이입했고, 심지어 경찰의 구조 작전에 반대하는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심리는 가정폭력, 군대 내 구타, 학교나 직장에서의 괴롭힘, 종교적 세뇌 상황 등 다양한 권력관계 속에서도 확인됩니다. 피해자가 관계에서 완전히 통제권을 잃었을 때, 오히려 가해자의 사소한 ‘비폭력적 행위’조차 긍정적으로 해석되며, 고마움이나 애착으로 전환되는 기제가 작동합니다.


2.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한 심리 반응

많은 이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을 극단적인 인질 상황에나 해당되는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반응이 특정 성격의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극한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 속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은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신이 놓인 현실을 심리적으로 조정하려는 방향으로 감정을 재구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그 사람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그가 나에게 물 한 잔을 줬다”는 사소한 행동이, 머릿속에서는 점차 ‘그는 내 편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이는 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과 기억을 재조정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왜곡된 감정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심리적 기만입니다. 즉, 살아남기 위해 ‘이 사람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는 것이며, 이 믿음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감정적 선택입니다.


3. 심리적 기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심리적 현상은 단순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호감을 느낀다거나,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결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심리 기제가 서로 얽혀 작용하면서 발생합니다.

첫째,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됩니다.
위협적인 자극이 반복되면, 신경계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은 과잉 활성화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가해자가 위협을 중단하거나 일시적으로 친절한 행동을 보일 경우, 뇌는 그 순간을 ‘위기의 탈출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둘째, 피해자는 점차적으로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이 의존은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이 사람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키며, 스스로의 감정과 인식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셋째, 이러한 심리적 전환은 ‘인지 부조화’를 줄이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입니다.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내면적으로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식의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감정 구조를 형성합니다.


4.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스톡홀름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단순히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그 안에 어떤 생존의 논리가 숨어 있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자책이나 외부의 비난은 오히려 회복을 방해합니다. 피해자가 “왜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혼란을 겪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공감입니다.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은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피해자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과 인간적인 지지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납득보다는 공감, 분석보다는 이해가 먼저

사람들은 종종 “왜 가해자를 감싸는가”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감정은 어떤 심리 구조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단지 특수한 범죄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상적 관계 안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보편적 심리 반응입니다.

그 안에는 공포와 체념, 희망과 분열이 겹쳐진 복잡한 내면이 존재하며, 그 누구도 쉽게 단정하거나 평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한 사람의 심리를 납득하려 하기보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 공감이야말로, 누군가의 회복을 시작하게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