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스스로를 꽤 독립적인 존재라고 여깁니다. ‘나는 나다’라는 전제 아래, 내 생각과 감정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고 믿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그 믿음이 슬며시 흔들리는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혼자 있을 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해버리고, 평소에는 꺼내지 않았을 말을 충동처럼 내뱉는 일.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그랬지?’ 하는 낯선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낯선 감정의 정체를 파고들고자 합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무리 속의 나’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감정은 어떻게 번지는가
사람이 많이 모인 공간에서, 에너지가 달라지는 순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조용히 앉아 있던 당신이 누군가의 웃음에 따라 웃음을 터뜨리고, 누군가의 박수에 자연스럽게 손뼉을 치게 되는 그 감각. 그런 현상은 단순한 분위기 탓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감정 전염’이라고 부릅니다.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깊게 퍼지며 그 전파는 언어나 논리를 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표정, 말투, 몸짓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면서, 우리는 그 감정의 결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행동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그 안에서는 어느새 자연스러워집니다.
기쁨이나 흥분처럼 긍정적인 감정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긍정적인 전파력이 있지만, 분노나 혐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말 내 안에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옮겨온 것인지’를 가끔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군중은 더 빠르고 강력하다
오늘날 우리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자주 ‘군중’의 흐름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천 개의 댓글, 수만 개의 좋아요, 그리고 실시간으로 번져나가는 밈과 여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수가 옳을 것’이라는 전제를 내면화합니다.
특정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빠르게 퍼질 때, 그 내용의 질이나 진위보다 ‘남들이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수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 정확한 정보 없이도 거부감부터 느끼게 되는 경우 역시 흔합니다.
익명성과 빠른 반응성이 보장된 디지털 공간에서는 감정의 파동이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어 흐르기 쉽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비판적 사고를 잠시 멈추고, 편안한 다수의 흐름에 기대고 싶어지지요. 하지만 진짜 위험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익숙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나의 기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왜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3. 책임이 흐려지는 순간, 판단도 흐릿해진다
왜 사람들은 집단 안에 있으면, 혼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까요? 그 중심에는 ‘책임의 분산’이라는 심리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방관자 효과’입니다. 사람이 길거리에서 쓰러졌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우리는 바로 달려가 도와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행동은 지체됩니다. ‘누군가는 이미 신고했겠지’,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이 책임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긴급한 상황뿐만 아니라 회의장, 학교, 조직 생활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집단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반대 의견을 갖고 있지만 괜히 튀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게 되거나, 다수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는 순간에도, 그 이면에는 같은 심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입장은 사라지고, 집단의 흐름이 나를 대신하게 됩니다. 마치 방향을 잡지 못한 배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말이죠.
4. 나로 남기 위한 훈련
그렇다면 우리는 이 흐름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요? 단순히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으로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판단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먼저 찾는 연습입니다.
정보를 접할 때,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일까?”
“나는 왜 이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가?”
“내가 이 말이나 행동을 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감정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감정이 중심이 될수록 이성은 뒷자리에 밀리게 됩니다. 특히 다수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한 걸음 멈추고, 내 안에서 판단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된 자문과 사유는, 언젠가 어떤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그 감동과 몰입 뒤에는 늘 ‘경계’가 필요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 감동은 집단에 의한 지배로 바뀌기 쉽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감입니다. 완전히 빠져들지도, 완전히 끊어내지도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곧 자율성이고, 군중 속에서도 나 자신을 지켜내는 힘입니다.
5. 나는 군중 속에서도 나일 수 있을까
군중은 놀라운 에너지를 줍니다. 집회에서, 공연장에서, 응원석에서 우리는 수많은 타인과 하나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 연결감은 때로 깊은 감동으로 남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감동과 몰입 뒤에는 늘 ‘경계’가 필요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 감동은 집단에 의한 지배로 바뀌기 쉽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으로, 완전히 빠져들지도, 완전히 끊어내지도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곧 자율성이고, 군중 속에서도 나 자신을 지켜내는 힘입니다.